미국교회 문화와 한국교회 문화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기독교 문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좀 더 이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앞선 칼럼에서 말했듯이 여기에 성의 있는 답을 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문화’라는 단어를 체감한 것은 어릴 적 동네 가까이에 있던 극장 이름을 통해서였습니다. 안국동과 낙원동 사이, 지금은 천도교 수은회관 근처에 있던 극장 이름이 ‘문화극장’이었습니다. 개봉관은 아니었고 싼값에 두 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동시상영 관이었습니다. 조금 더 가면 있던 단성사나 피카디리 같은 개봉관은 초등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여기서 그 당시 최고의 만화영화인 (지금 식으로 하면 애니메이션) ‘황금박쥐’를 보았고 전투기 조종사의 활약을 그린 ‘빨간 마후라’(요즘 식으로 하면 한국판 탑건)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문화’, 그러면 영화가 생각납니다. 그러나 영화가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장르일 수는 있어도 문화의 모든 것은 아닙니다. 문화는 그보다도 훨씬 깊고 다양한 것들을 담아내는 개념이며, 결국 ‘개인과 공동체가 살아가는 모습’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연히 종교도 포함이 됩니다. 그런데 예전 교회의 분위기에서라면 기독교가 문화 속에 포함된다는 말은 낯설어하거나 공격을 받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문화는 세속적인 영역이고 기독교는 신성한 영역에 속한 것인데 그 둘을 연관 지어 말하는 것도 그렇고 더군다나 기독교가 문화 속에 있는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은 불경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생각은 우리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교회의 입장도 비슷했습니다. 아니, 사실은 우리의 그런 생각은 그 당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들은 20세기 미국 복음주의 교회들의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 당시 미국교회의 문화에 대한 견해는 무엇이었을까? 이 부분에 관해 연구한 팀 켈러 목사님에 따르면, 이 당시 미국교회의 입장은, ‘무관심’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얘기하면 ‘문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른 신앙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여겼기에 그런 입장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당시 교회가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제시한 이상적인 직업은 예술가나 기업 지도자들이 아니라, 목회자와 선교사들이었으며, 그로 인해 전임 사역자가 되어 세계를 복음화하는 일에 우선 가치를 두게 되었고 그 결과 많은 젊은 크리스천들이 선교사로 헌신하는 흐름이 형성되면서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그들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선교사들이 그런 배경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한국교회의 초기 분위기는 문화를 교회와 연관 지어 생각하기보다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신앙에 방해된다는 견해를 가졌습니다. 저의 중학교 시절 주일학교 담임이셨던 권사님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을 못마땅해하셨습니다. 크리스천이면 그러면 안 된다고 공공연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나는 크리스천이 아닌가 보다’라는 죄책감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당시 미국교회가 나름대로 세상에 관여하는 방식은 있었습니다. ‘이 사회는 온전치 않다. 이런 세상을 바꾸려면 한 영혼씩 전도하여 그들을 제자로 훈련시켜 변화시키면 된다. 세상에 진정한 크리스천이 충분히 많이 있다면 사회는 더 정의롭고 도덕적으로 변화될 것으로 본다’라는 것입니다. 팀 켈러 목사님은 이런 관점을 17세기 유럽의 독일어권 교회에서 일어난 운동인 경건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운동의 강조점은 지성과 사회 질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선교와 개인적 제자훈련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교회가 문화에 관한 관심을 가지면서 택한 방법이 이와 비슷합니다. 개인의 구원을 통한 문화의 변화가 문화에 대해 무관심 또는 부정적으로 반응하던 초창기의 모습에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간 한국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가진 문화에 대한 태도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관점이 이렇게 변해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종 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