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료

 
가정교회 Q & A
이종수목사 2005-07-19 10:39:16 221

아래 내용은 가정교회 준비단계를 했거나 아니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실제적 사례에 근거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분량은 한글 10point로 22 page 입니다.

 

 

 

 

가정교회 Q & A


                                       


1.문제가 없는 목장이 잘 되는 목장이다?


2.목장에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3.목장에는 상담 전문가가 없어서 상담이 이루어 지지 못한다?


4.목장을 떠나면 문제가 해결이 된다?


5.목자는 가르치는 역할이다?


6.가정교회 시스템을 따라만 하면 성공한다?


7.고분고분하지 않은 목장식구는 골치꺼리다?


8.섬긴다는 것은 항상 ꡒ예스ꡓ를 하는 것이다?


9.목장의 전도는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한다?


10.목자는 신앙연륜이나 경험이 많고 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11.가정교회인 목장과 소구역은 같은 것이다?


12.목장에서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한다?


13.목장 참석 인원보다 주일 출석이 많다?


14.목장은 같은 지역으로 나눈다?


15.목장에서 제자는 가르침을 들어서 키워진다?


16.가정교회를 하면, 교회가 하나되기 힘들다?


17.목장교사는 제일 성경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18.여전도회가 없어서 부엌봉사가 힘들다?


19.목자를 새로 임명하면 다들 거부한다?


20.목장분가는 슬프다?




1.   문제가 없는 목장이 잘 되는 목장이다?


우리 교회에 가정교회 연수를 오신 어느 목사님께서 근심스레 말씀하셨습니다. 가정교회를 시작하신지 한 일년이 되어가는데, 제일 열심히 모이고 나눔도 잘 하던 목장에 문제가 생겼답니다. 자주 모여서 친해지고 서로 너무 잘 알게 되다 보니 이전에 좋아하던 목자와 목녀에 대한 실망으로 목장이 위기에 놓였는데 이로 인해서 교회 전체에 새로 시작한 가정교회에 관한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까봐 염려를 하시는 듯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조금은 의도적으로, 목사님께 용기를 드리기 위해서 신이 나는 목소리로  동시에 외쳤습니다. ꡒ아~ 목사님, 그 목장이 목장을 아주 제대로 하는거네요!ꡓ 조금 의아해 하시는 목사님께 우리 교회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문제들을 말씀 드렸습니다. ꡒ교회가 정말 주님의 일을 하는데도  훼방이나 어려움이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성경 말씀에 잘 나와 있으니 염려하지 않고 그대로 하니까 되던데요.ꡓ


물론, 목장식구들이 서로 사랑하고 말씀에 따라서 살면서 문제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행복하게 어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은 아니듯이, 별 탈이 없는 교회나 목장도 항상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목장은 많은 기도 응답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와 목사님을  매우 사랑하고, 서울침례교회의 교인으로서 긍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문제도 역시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장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인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목장에는 불신자들이 속해 있고, 영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며,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문제도 계속해서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따금씩 모임을 가지고,  형식적으로 만나고, 피상적으로 자신들의 실제의 모습을 가리며 드러내지 않으면 갈등이나 문제가 노출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서로 도우며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어 갈 기회는 놓치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오랫동안 익숙해진 목장 식구들끼리 지내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불신자나 새로운 식구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영혼 구원을 게을리 해서 시험꺼리나 훼방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목장은 영적인 싸움터의 최전방입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작은 일이나 말 한마디로 시작해서 일이 커지기도 하고 겉잡을 수 없이 온 목장 식구들이 휘말리게도 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처럼  때로는 패가 갈리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자들에게 겪었던 것과 같이, 실컷 고생만 한 목자 목녀가 오해도 받고, 애매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목자가 간증설교를 할 때에 말했습니다. 목장 식구에게 이유없이 공격을 당할 때에 이것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의 공격이므로 목자나 목녀,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영적인 눈으로 이것을 보고 깨어서 감정적으로 휘말려 들지 않도록  직접 공격을 받는 상대방을 잘 도와 주어야 한다고요.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감사와 찬양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을 하는 것입니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용서하며 사랑하기로 결심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원망할 일을 감사하고, 나의 어려움을 다른 사람의 유익으로 만들어 지게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에 신뢰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면, 사단도 이런 사람을 당할 재간이 없어서 결국에는 떠나가게 됩니다. (야고보서 4:7)


실제로 목장에 어려운 문제들이 태풍처럼 지나간 뒤에, 목자나 목장 식구들이  말씀을 삶에 실천하는 비결을 배워서 더욱 성숙해지고, 불신자들도 예수님을 영접하며 변화되는  것을 흔히 목격하게 됩니다. 목장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수치스러워 할 일이 조금도 없는 것입니다. 당연스레 받아들이고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해서 예수님 하신 방법만 그대로 쓰면 반드시 승리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2-3)

ꡒ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가지 시험에 빠질 때에, 그것을 더할 나위없는 기쁨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내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ꡓ



2.목장모임에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어릴 적부터 주일에는 교회에서 온종일 살다시피하고, 교회에서 갖은 봉사와 궂은 일은 도맡아 하던 한 형제가 휴스턴으로 이사를 와서 그 유명하다는 서울침례교회의 가정교회에 기대를 잔뜩 걸고 목장에 참석을 했답니다. 그런데 의외로 성경 공부는 너무나 엉성한데다가, 나눔의 시간이라는 것이 잡다한 부부싸움을 한 이야기나 세상살이 이야기 뿐이고,  별로 배울 것도 없는, 도무지 영적이지 않은 것 같은 모임을 매주 하길래 아무래도 목장을 잘못 정해서 그러나 보다라는 생각을하고 다른 목장으로 옮겨갔습니다. 거기도 역시 별다를 것 없이 마찬가지라서 이 형제는 혼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 이런 걸 가지고 왜 그렇게 좋은 교회라고 소문이 났을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장식구들의 맨날 똑같고, 하잘것 없는 이야기들을 늘 한결같이  경청해주는 목자와 목녀를 지켜 보면서, 영혼 사랑의 감동이 가슴에 진하게 느껴져 왔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고, 성경 지식이 없어서 남들을 가르치지 못할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관심을 집중해서  열심히 그들 삶의 얽힌 일들과 아픔을 들어 주곤 하며 그들에게 무언가 필요할 때는 헌신적으로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제야  그가 자신을 돌아보게 되니, 이제껏 하나님께서 정작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에 관한 일들은 뒤로 제쳐 놓은 채,  분주히 다니며 뭔가 많이 하고 있고, 알고 있다고 착각하던 본인의 실제의 모습을 깨닫게 되었다고 울먹거렸습니다. 그 이후로, 그 형제도 변화되고 목자가 되어,  믿음이 없거나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려하며 섬기는 삶을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드시 가정교회를 해야만 구원이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전도 훈련이나 행사,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사람들이 변화를 받고 구원을 받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러한 프로그램이나 방법만 의지했을 때는,  ꡒ내가 너를 잘 가르쳐 줄께,  이만치 나 있는 곳까지 올라와봐…ꡓ 하는 식이 되기 쉬웠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었습니다.


가정교회의 섬김이 다른 점은, ꡒ너 거기 있니? 그래, 내가 거기까지 내려가서 붙들어 줄께. 우리 같이 올라가 보자.ꡓ 라고 오랜 인내로 기다려 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며,  그들과 밀착된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는 자나 섬기는 자가 함께 변화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과 신뢰를 주고, 열매를 거두는데  더 효과적이 될 뿐 아니라,  섬기는 자도 신앙이 함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정교회 연수나 세미나를 오신 목사님들께 늘 해드리는 말이 있습니다. ꡒ목장 모임은요, 엉성할수록 잘 하는거예요. 그래야 불신자나 초신자들이 어색하거나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잘 어울리게 되거든요.ꡓ


ꡒ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약한 사람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내가 복음의 복에 동참하기 위함입니다.ꡓ  (고린도전서 9:22-23)



3. 목장에는 상담 전문가가 없어서 상담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ꡒ오늘,  OO 백화점에 갔더니 세일을 하는데,  좋은 물건이 아주 많아요. 꼭 가봐요.ꡓ

ꡒOO에서 하는 애들 프로그램이 참 잘 되있어요. 그 집 애들도 한번 보내봐요.ꡓ

ꡒ TV를 보니까, 요즘엔 OO방법으로 살을 뺀대요.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ꡓ

ꡒ 아니 정말 그 사람이 그렇게 했단 말이예요? 이젠 더 이상 상대도 하지 말아요.ꡓ

ꡒ사람들 말을 들으니, 그 자매 성격이 무척 까다롭대요. 조심하세요.ꡓ

ꡒOO 삶공부가 저희에게 참 도움이 되었어요. 형제님도 이번에 들어보세요.ꡓ

ꡒ자매님, 정말 잘 참아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자매님의 문제 가운데 분명히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ꡓ


우리가 상담 전문가이던 아니던,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의 일상 생활은 서로 간의 상담으로 이미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가 상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바른 상담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른 상담을 할 것인가, 바른 상담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른 상담을 따라 갈 것인가 만을  계속해서 선택해야 할 뿐입니다.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가 우리 앞에 가로 막혔을 때에, ꡒ올라갑시다. 우리는 반드시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ꡓ 하며 희망을 가지고서 격려할 수가 있고, ꡒ 우리는 도저히 그 백성에게로 쳐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장대같고, 우리는 메뚜기와도 같습니다.ꡓ 라고 낙심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앞에 시험이나 유혹이 있을 때에도, ꡒ먹어서는 않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ꡓ 라는 사람의 말을 따를 수도 있고, ꡒ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ꡓ 라고  하는 사람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의 매스컴이나 서적, 또는 다른 사람들로 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치며 사느냐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 다른 사람이 낙심을 할 수도 있고, 절망 가운데서 일어날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가족이나, 이웃, 교회 그리고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은혜를 나누며 서로 서로를 믿음과 소망가운데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잠깐이라도 스쳐가는 그 한사람, 우리에게 일어나는 작은 하나의 사건이 예사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아름다운 목적 아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구로서, 자신의 위치의 중요성을 언제나 기억하고,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지를 항상 점검하며, 죄에 빠질 위험에 있거나 어려움에 처해있는 다른 형제 자매를 진심으로 돕기 원한다면, 상담 전문가이신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지혜를 부족함이 없이 주셔서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예수님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시며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무거운 문제를 함께 붙들고 가서 주님 발 앞에 가져다 내려 놓을 수 있도록, 주님께 맡길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내가 과거에 겪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그저 쓴 뿌리나 상처들로 허비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소망 가운데 서게 하는 능력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에게서 부터 멀어지거나 죄에 빠지는 일로 부터 서로가 서로를 지켜줄 수 있을 것입니다.


ꡒ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에 빠져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ꡓ (히브리서 3:12-13)



4. 목장을 떠나면 문제가 해결 된다?


신앙생활을 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다보면, 애매한 소리를 듣던지 엉뚱한 일에 휘말리는 일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나 목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고  때로는 그것이 한번에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옮겨 다니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안락한 것을 사모하기 때문에, 고통이나 어려움이 올 때에 먼저 피해 보려고 하는 본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이나 두려움이 있을 때에 그 기억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보려고, 일이나 오락에 빠져보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하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에 빠지는 일도 있습니다.


목장에서도 마음에 불편함이 있던지 상처를 받으면, 제일 쉬워 보이는 해답이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단의 거짓말에 속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 이혼을 하는 것도 헤어지면 문제가 끝난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자식 문제로, 금전 문제로, 재혼 문제로 이어져서 거의 평생을 가는 것을 봅니다.


새로 목자, 목녀가  된 후에 하도 목장식구들이 속을 썩이니까 힘이 듭니다. 이내 걷어 치우자니 자존심 상하고, 차라리 다른 지방으로 이사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번씩 안해본 목자가 거의 없다고 말 할 정도입니다. 새로 분가할 때에 따라 나온 식구들이 계속해서 먼저 목자와 비교를 하며 새 목자를 무시하고 말을 안들으니, 내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들은 잘 하는  전도가 도무지 어렵기만 합니다. 물질과, 시간과, 노력에 힘겹게 희생을 해야 합니다. 몇 년씩 섬겨줘도 자기 집에는 한번도 초대하지 않는 불신자도 있습니다. 다른 식구에게 더 잘해준다고 시험이 들어서 힘들게 하는 식구도 있습니다. 별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상해서 불만을 쏟아냅니다. 뺀질 뺀질하며 도무지 신앙이 자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선동하는 이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목장에는 목자를 따돌리고 자기네끼리 술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까지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잘못되면, 언제나 그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리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서로 손가락질 하며 원망합니다. 교회나 목장에도 남을 위해서 나와 주는 듯이 툭하면 안 나온다고 행세를 부립니다.


이런 상황에 있을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삶이나 예수님을 사랑하던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합나다. 그래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애매히 받는 고난을 피하려고 하셨으면, 우리는 아무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사시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사도 바울이나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환난과 궁핍, 곤경, 매맞음, 옥에 갖힘, 난동, 수고, 잠을 자지 못함, 굶주림뿐 아니라 배신과 모함까지도 기쁘게 견디어 냈습니다. 우리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베드로가 기록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신을  피해자의 자리에 두고 분개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서 스스로를 불쌍히 여깁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축복의 땅으로 향할 때에, 그 광야에서도 의복과 신이 헤지지 않게 하시며, 굶지 않게 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애굽에서 먹던 오이와 부추가 그리운데, 매일 똑같고 맛이 없는 만나만 먹어야 한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듣고 괜히 따라나와서  메마른 땅에서 고생만 하는 불쌍한 신세라며  원망하고, 울고 불고 했습니다. 종살이할 때의 고통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광야에서는 볼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것들만 기억에 떠올리며 아쉬워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눈으로 모든 것을 보았고, 선택적으로 기억에 떠올리고, 근시안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이나 다른사람이 아닌, 자기 스스로의 생각의 피해자입니다.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 제7과의 ꡐ하나님 관점에서 바라보기ꡑ에서는 이 땅에서의 삶은 계속적인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일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을 제대로 관리하는지를 관찰하시고 우리가 어떤 것을 맡기기에 신뢰할 만한지를 보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을 통과해서 복과 상과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를 원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절대로 주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장도 한 군데를 정하고 6개월 이내에 더 적절한 곳을 찾으면 한번은 옮기도록 허락을 하지만, 문제가 생겨서 옮기는 것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내뱉은 마음에 맺히는 애매한 말 한마디도, 내게 무심한 다른 형제나 자매도,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생기는 마음의 상처도, 피할 수 없는 곤란한 상황도, 모두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장차 내가 주님 앞에서 점이나 흠이나 부끄러움 없이 서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반드시 이길 수 있게 하신다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배려 가운데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여건에 상관없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삶이 풍요로워지게 될 것 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이 힘든 상황에서도, ꡒ지금 포기하면, 예수님 앞에 섰을 때에 제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가 없어요.ꡓ 라고 온갖 힘을 다해서 참아내는 목자와 목녀들때문에 목장이 불어나고, 하나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ꡒ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ꡓ    (고린도 후서 4:17-18)



5. 목자는 목장에서 가르치는 역할이다?


간혹, 목자를 권위직으로 생각하거나, 목자가 모든 것을 가르치며, 완벽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난 후, 빠르면 일년 이내 보통은 이 삼년 이내에 목자가 되는 경우도 많은데 목장 식구가 이런 목자나 목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경우를 봅니다.


주님의 공동체 안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목사님도, 집사도, 목자나 일반 성도도 어느 한 사람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의인이라고 불러 주신 것도, 우리가 장래에 그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회복 되어질 것을 전제로 하신 것이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누구는 가르치기만 하고 누구는 배우기만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해 동안 교회를 다니고 신앙 생활을 하고, 직분을 가지고 봉사를 하던 저희가 오히려 믿지 않거나 믿음의 연륜이 없는 목장 식구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은 것을 느끼곤 합니다. 비록 오랫동안  거친 인생을 살아오고 아직도 거친 말투와 행동을 하는 목장에 갓 나오는 형제에게서도  우리에게 없는 것을 보고  배울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우리의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모든 것이 분명해야지만 납득이 가서 예수님이 쉽게 믿어지지 않던 어떤 자매에게서는 한번 인정하게 된 것은 확실하게 실천하는 이중성 없는 순수한 모습을 배우게 됩니다. 새로이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서는 우리에게는 이미 식어버린 뜨거운 첫사랑과 전도의 열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종교에 심취해 있는 목장 식구이지만, 그리스도인들보다도 오히려 더 성실하고 정직하며 인내할 줄 아는 모습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래서 목장의 나눔의 시간은 성경말씀을 잣대로 삼아 누구의 잘못을 가려주고 판단해주고 훈계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곳입니다. 실수나 실패를 탓하지 않고 오래 참아주며 용기를 주는 곳입니다. 주님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다짐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에게 어김없이 응답하시는 주님 때문에 서로가 변해가고 자라가는 것을 보고 배우며 사귐의 기쁨을 나누는 곳입니다.


ꡒ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ꡓ (골로새서 3:16-17)



6.가정교회 시스템을 그대로 따라만 하면 성공한다?


가정교회로 전환한 후에 교회가 많이 변화가 되고 교인들이 행복해 한다는 소식을 듣는가 하면, 혹간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교회도 있다는 소식도 듣습니다.


어느해에 가정교회 세미나가 열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목자가 사역에 대한 간증을 하는 시간에, 이제는 세미나에 오신 목사님들을 여러차례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 분이 가정교회에 성공을 할 분인가 아닌가가 짚어진다고 농담섞인 말을 했었답니다. 목사님들께서는 다소 긴장(?)을 하셨고, 어떤 목사님은 자기는 어떻겠냐고 말해 보라고 하시더라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었습니다.


저도 언젠가 가정교회 평신도 세미나를 마치신 세 분의 각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의 세미나 소감을 연이어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목장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영혼 구원의 역사를 부러워들 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세 분의 개인적인 반응이 다 다른 것이었습니다.


한 분은, 교회의 구석 구석을 샅샅이 둘러보고 모든 행정 처리를 위한 서류들을 다 훑어 보았는데, 아주 훌륭하다며 본 교회에 돌아 가셔서 이렇게 다 바꾸어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또 한분은 한숨을 푸욱 쉬시며, ꡒ우리 교회는 안되겠어요. 이 교회 목자들의 헌신도는 정말 놀라워요.ꡓ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장로님께서는 제게 되물으셨습니다. ꡒ 자매님, 우리 교회도 이렇게 변화가 되어야 할 텐데,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ꡓ ꡒ장로님께서 먼저 이러한 목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시며 본을 보이시면 안될까요?  다른 사람들을 먼저 바꾸려 하시기 보다는요.ꡓ ꡒ그래야 겠지요?  뭐든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으면 좀 도와주세요.ꡓ 이분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을 높이셔서 자신이 계획하고 계시는 일을 하시기 원할지를 누구나 알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3: 12)


우리는 많은 경우에 성령님의 능력을 너무 낮게 평가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능력과 생각과 자원의 한계 안으로 그분을 제한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쉽게 성령님보다 앞서 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률적으로 적용하거나 세상의 방법을 그대로 쫓아갑니다. 또 우리는 내가 먼저 썩는 밀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반으로 싹을 트게 하시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다른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건물이 없어서 안되요, 성도들이 따라주지 않아서 않되요, 이래서 안되요, 저래서 안되요…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불신앙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리도 창녀도 살인자도 얼마든지 변화시키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한 사람을 통하여 온 세상을 바꾸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무조건 믿고 따라가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의 우상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방식만을 그대로 따라 하면, 때에 따라 합당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체험하기가 어렵습니다. 놀라우신 예수님의 사랑의 넒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가는 감격 또한 맛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과, 영혼을 사랑하는 바른 동기가 없이 하는 일은 겉보기에는 그럴사한 결과가 있더라도 하나님께 크레딧으로 받아 들여질 지도 의문입니다.


ꡒ~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을 채워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점점 더 알고,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기쁨으로 끝까지 참고 견디기를 바랍니다.ꡓ  (골로새서 1:9-12)



7.목장에서 고분 고분하지 않은 목원은 골치꺼리다?


목자와 목녀들은 불신자들에게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오랜 기간을 섬겨가며 기다립니다. 그러다가 이제쯤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해서, 교회에 한번 나와 보라거나 삶 공부라도 좀 들어 보라는데도 영 들은 척 만척 하는 목장 식구들 때문에 애가 탑니다. 목장 식구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충고나 권고를 해주는데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고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서 낙심해 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있던 어느 날, 하나님께 엎드려서 하소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ꡒ하나님, 나를 위한 것도 아니고 본인들 잘 되라고 해주는 이야기 잖아요?

ꡒ그렇지? 너도 답답하지?ꡓ

ꡒ?ꡓ

ꡒ나도 모든 일을 어떻게 해야 바른지를 너를 위해서 성경에 일일이 기록해 놓았다. 네가 내 말에 순종하면 우선적으로 네 자신에게 유익이 될터인데 너는 나의 명령과 계명을 빠짐없이 다 지키고 있니?

ꡒ……….ꡓ

ꡒ저 사람이야 나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런다고 치자.  그런데 너는 나와 꽤나 가깝지 않니?  그런데도 내 말을 안 들으니 내가 보기엔 네 모습이 더 답답하구나.ꡓ

ꡒ ……주님!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다른 사람을 판단한 제가 더 나뻐요.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도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있었네요.ꡓ


그 이후 부터는 그 목장 식구를 보면 그저 감사하고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도 잘 참아지고, 귀한 내 식구로만 여겨집니다. 뭔가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 막혔던  것이 뚫린 것같이 시원하고, 마음에선 기쁨이 솟아납니다. 저사람이 바로 우리 목장의 복덩이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와 주님 사이에 가로 막혔던 교만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눈이 어두워 불순종하는 내 모습조차 몰랐던 눈을 뜨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각별한 계획을 세워서 내게 맡겨주신 나의 영적인 자녀들 까지도 자칫 원망스럽게 하고, 미워지게 만들려고 온갖 계교를 쓰곤 합니다. 자기 자녀가 어떤 잘못을 한다고  부모가 그를 미워한다면 누가 그를 사랑해주고 기도해 줄 것입니까. 영적으로 고아가 되어버린 그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뻔합니다. 부모만큼은 자녀가 아무리 속을 썩이고 미운 짓을 해도, 싫어하거나 포기 할 수 없습니다. 목자나 목녀도 목장 식구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이미 그는 영적인 부모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택하신 우리를 앞세워 다른 사람을 복 주시려고 통로로 세우셨는데, 그것이 막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대단한 손실이 생깁니다. 훗날에 주님 앞에 서 가지고,  ꡒ 그 목장식구가 이러 이러하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서…, 도무지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곤 해서…..ꡓ 와 같은 변명은 전혀 이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보내주신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하여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그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성품과 자세를 다듬어 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목적 안에서 말입니다. 이러한 모든 불편한 상황들로 인해서 나 자신 조차 알지 못하던 나의 생각과 마음이 그대로 말과 행동을 통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제게 유익이 됩니다.


그러한 시각으로 바뀌게 되니,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목장 식구로 인해서 조차도 하나님의 나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되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 사람도 언젠가는 나로 인해서  이러하신 하나님을 알게 되고 변화가 되겠지 하는 꿈이 생기게 됩니다.


새로 분가한 어느 목자가 간증을 할 때에 말했습니다. 자신이 목자가 되고보니 나눔의 시간에 협조를 안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보면 분통이 터지는 것을  참느라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르겠답니다. 자신이 이전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이전 목자를 힘들게 했었는지 이제야 깨닫고, 미안스레 생각하게 되었노라고 말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흔히 하는 이야기 입니다. 자기가 목자를 힘들게 하던 사람은 자신이 목자가 된 후에 똑 같은 목장 식구를 만나서 그제야 철이 든다고요. 섬김만을 받던 사람들이 이제는 섬기는 자로 변화되고, 남을 힘들게 하던 자들이 이제는 남을 참아주는 자가되고, 남을 불평하는 자들이 이제는 자신을 다듬어가게 됩니다.


ꡒ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앎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경건에 이르게 하는 모든 것을, 그의 권능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영광과 덕을 누리게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이 영광과 덕으로 귀중하고 아주 위대한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약속들로 말미암아 여러분이 세상에서 정욕 때문에 부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1:3-5)



8.  섬기는 것은 항상 YES  만 해야하는 것이다?


어느교회의 간증 집회에서 가정교회에 관하여 질의 응답에 답변을 할 기회가 있었을 때에,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ꡒ목자와 목녀는 항상 불신자들을 섬겨주어야 하니까, 예를 들어서 술을 먹자고 할 때에도 먹어줘야 하는 것입니까?ꡓ  때로는 어떤 목자는 이렇게 고민을 털어 놓습니다. ꡒ목원이 계속해서 돈을 빌려 달라는데, NO를 하면 목장에 안나올 것 같습니다.ꡓ 이런 경우들의 실제 상황과 조건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한 마디로 잘라서 일률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목자들 중에는 과거에 술을 즐겼으나, 함께 술을 먹어주면 버릇이 되거나,  예수를 믿는다며 술만 잘 먹는다고 깔보이게 될까봐서 일체 술을 끊고 입에 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삶에 지치고 방황을 하는 전도 대상자가 술을 한병 사들고 늦은 밤중에 찾아왔을 때, 술을 안마시기로 결심을 한 목자 대신에, 목녀가 맥주 한잔을 같이 마셔주고, 새벽까지 이야기 상대를 해 주었다는 간증도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고 안하고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어떤 동기와 목적이 있는지를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늘 이런 시험을 거치셔야 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나 안 고쳐주나 보자, 그리고 손을 씻고 먹나 아닌가를 보자 하고 늘 걸어서 넘어뜨리려던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학자들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섬김의 본을 보이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 분이었지만 어떠한 틀에 매이지는 않으셨습니다. 백성들을 가엽게 여기시고 그들의 가난이나 질병이나 무슨 문제던지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었지만, 이들이 요구하는 모든 일을 해결해 주지도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때가 아니라서, 때로는 그들을 시험하시려고, 때로는 그들의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 거절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유익을 위해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서 모든 것을  판단하셔서 그대로 행동하시곤 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예수님 때문에 변화 된 간증이 넘쳐납니다. 예전에는 어떠했는지 솔직한 간증으로 인해 벼라별 과거 이야기가 다 나오곤 합니다. 우리의 추한 과거가, 우리의 어리석음이,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을 높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자랑이 되는 풍조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모습의 불신자가 와도 다 받아 들여 질 뿐만 아니라, 그러할수록 값으로 치자면 금 값으로 매겨져서 더욱 관심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과거사나, 옷차림, 행동거지를 가지고 서로 판단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교회나 목장에 처음 방문 하는 사람들을 값으로 매기자면, 불신자는 금값, 배우자중 한사람이 불신자면 은값, 기존 신자는 동(똥)값입니다. 목사님께서 언제나 우리가 필요한 사람을 찾지 말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으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도 영혼 구원의 목적으로 하거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면 다 받아들여지고 넘어갑니다. 영혼구원과 상관이 없고 우리 끼리만의 행사이면, 교회의 예산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과감히 없애버리곤 합니다. 모든 일에 분명한 기준이 있으니 회의가 거의 없어도 일들이 잘 진행 되어 집니다. 잘못을 했다고 생각이 되실 때에는 목사님께서도 공동 앞에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를 하시는 본을 보이십니다. 교회와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서로가 희생을 감수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끝이 날 줄을 모릅니다. 목자들이 형편이 어려운 목장식구들을 돕기 위해 힘에 지나친 희생을 합니다. 아파트 세가 없으면 대신 내주고, 되돌려 받지 못할 각오를 하고 사업 자금을 대주고, 미국생활에 자리잡지 못해서 살림이 없으면 자신의 세간을 날라다주고, 차가 없어 일을 못하면, 몇달이고 출퇴근을 시켜주고, 삶공부를 할 동안  집에 가서 애기를 봐 주고, 먼저 목자는 새로 목자를 세워서 분가를 시켜놓고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선교 헌금도 내주고, 사역을 뒷바라지 해줍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던지 내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장 안에서 드려지는  기도들을 예수님도 NO를 못하시겠는지 터무니없는 기도들을 다 응답해 주십니다. 구직, 아픈데 낳게 해주세요, 좋은 거처를…, 차가 필요해요.. 이런 기도 뿐 아니라, ꡒ제가 라식 수술이 실패해서 눈물이 마르고 계속해서 약을 넣어야 되는데 이것이 나으면 교회에 나갈께요. 어디 기도해 봐 주세요.ꡓ ꡒ자매님이 급여가 두배만 오르면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하겠어요? 아예 세배가 오르게 해달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꼭 교회에 나오셔야 해요.ꡓ 등등. 그래서 기적이 상식이 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친히 일하시는 손길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ꡒ우리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하였습니다.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여러분을 위하여, 어떻게 처신하였는지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환란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ꡓ (데살로니가 전서 1:5-6)



9.  목장에서의 전도는 은사를 받은 소수가 한다?


예전에 다른 곳에서 살고 있을 적에 사영리를 들고 여기 저기 안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을 도와주고 마음이 열리게 되면, 예수  영접 기도를 하게 하고, 교회에 나오게 하는 것 까지는 되곤 하는데, 주일 날 교회에 데려다 놓고 부엌 봉사나 회의를 좆아다니다 보면, 이사람은 그 새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안절 부절 하곤 하다가 더 이상 교회를 나오기를 거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교회로 인도해 온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늘 잘 알고 익숙해진 사람들과 어울리는 습관이 밖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가정교회가 영혼 구원에 효과적이다 해서 가정교회로 전환을 하려고 여러 해 동안 늘 같은 사람들이 이 삼십 명씩 모이던 구역들을 적은 수로 나누자고 하면,  대부분의 첫번째 반응이 우리는 불신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서울침례교회가 처음 가정교회를 시작했을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원해서 섬김의 자세를 갖추고 나니까, 우연찮게 불신자를 만나게 하시고, 생각치 못했던 사람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이 또 자신들의 친척이나 친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제는 과속이 붙어서 미처 수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지역적으로 너무 멀거나 해서 다른 적절한 목장을 찾아서 서로 서로 보내주는 경우들도 제법 생깁니다.


하도 전도를 하고 싶어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발한 생각도 주십니다. 어떤 목자는 한국 음식점에 웨이트레스를 포섭해서, 주문을 받다가 한국에서 갓 온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즉시로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을 해 놓았답니다. 그래서 그사람이 식사가 끝나기 전에 그 자리로 찾아갑니다.  수첩에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셀 수 없이 적어가지고 다니며 기도합니다. 휴스턴 대학에 직장이 있는 어떤 목녀는 대학 웹사이트에 유학이나 연수를 오는 사람들에게 광고를 내서 휴스턴 공항에서 픽업부터 아파트에 정착하는 일을 모두 도와주고 저녁이나 먹자고 목장에 데려갑니다. 또 어떤 목자는 백화점이고, 상점이고, 한국인 점원이 눈에 띄면, 김밥을 싸들고 찾아갑니다. 어떤 형제는 골프장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을 여러 명 목장으로 인도했습니다. 한국에서 무작정 휴스턴으로 온 어떤 불신자를 찾아갔더니,  서울침례교회의 목장에 가면 뭔가 도움이 될꺼라는 소문을 듣고, 누가 자기를 목장으로 좀 안 데리고 가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


우리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고 얼마 후에는 집사가 되신 분이 한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교회를 다니는 바람에 휴스턴에 술집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과장된 일화가 생길 정도로 술 친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합동 목장을 하는데, 도무지 불편하고 어색해 보이는 분이 있어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과거에 그 집사님과 어울리던 술 친구였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한국에 다녀와 보니, 친구들이 하나 하나 교회로 가고 이제는 혼자 남게 되어서 자기 혼자서 할 일도 없고, 외로워서 할 수 없이  목장에 나오게 되었다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늘 들려지는 가운데, 전도하는 은사는 따로 있는게 아니라, 내가 이렇게 예수님 만나서 좋은데, 아직 이런 기쁨을 모르는 저 내 친구들은, 저 이웃들은 어떻게 하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전도를 하게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우리의 경우 아무리 성경의 지식이 있거나 사역의 경험이 있고 신앙의 연륜이 많다고 할지라도 바로 얼마 전에 세상 속에서 주님을 알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주님을 만나서 첫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그 전도에 대한 열정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의 연륜에 비례해서 불신자를 아는 숫자는 점점 반비례로 줄어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 사람의 은사나 노력으로 전도하고 양육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에, 최근에 믿은 형제나 자매들이 안 믿는 친구를 목장에 데려오고, 목자와 목녀는 사랑으로 베풀고 섬겨주다가 마음이 열릴 만할 때에 예수 영접 모임이나 생명의 삶 공부로 인도하고, 그리고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평신도들이 여러가지 삶 공부를 통해서 말씀을 삶으로, 사역으로 연결시키는 훈련을 합니다. 이렇게 온 교회가 영혼 구원해서 주님의 제자 삶는 한가지 목표로 한 덩어리가 되어 놀라운 힘으로 굴러갑니다.


2004년 10월 현재,  130개 가량의 목장이 있으나, 교회에 성인을 담당하는 목회자는 담임 목사님 한 분과 목사님께서 안 계실 때에 설교를 담당하시는 전도사님 한 분밖에 안계시지만, 끊임없이 불신자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거나 데려오는 초신자들과 그들을 맡아서 사역을 하는 목자와 목녀들을 합치면 부교역자가 수 백명이 있는 셈입니다. 전도나 영혼 구원을 은사나 사역으로 생각하기 이전에 삶의 일부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강권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다 보니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ꡒ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ꡓ (디도서2:14)



10.  목자는 경험과 신앙 연륜이 많고 여건이 잘 갖추어 져야 한다?


우리 교회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사역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목자들이 우리의 통념을 깨고 맡은 일을 훌륭하게 잘 감당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가 모두 일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 6일 이상 일을 하거나 하루 10시간 이상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합니다. 자신의 생계도 빠듯할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젖먹이와 어린 자녀들이 여럿 달려 있는 젊은 부부도 있고, 예수님을 영접한지 1-2년 밖에 되지 않은 목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반교회에서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교회를 방문하시는 목사님들께서 이렇게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 사역을 할 때에 특별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가를 목자와 목녀들에게 묻곤 하십니다. 저희들의 경우에는 항상 ꡒ저희 자신을 거스리는 것이요.ꡓ 라고 말씀드리면 부부가 둘 다 일을 하며, 매주 집을 오픈 한다던가, 음식을 해대기가 힘들다는 등의 대답을 기대하시던 목사님들께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십니다. 그래서 저희는 또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ꡒ저희는 예전에 비교적 이런 저런 평신도 사역의 경험이 있습니다.  일일이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아도 그럭 저럭 해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예수님을 믿어서 경험이 없는 목자들이나 극한 어려움에 있는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매달립니다. 구원 받지 못한 저 불쌍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달라고,  어려움에 처한 우리 목장 식구 좀 어떻게 해주십사  하고 그저 떼를 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도와주실 수 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경험과 성경지식이 많이 없는 목자들이나, 어려운 조건 가운데 있는 목자들이 오히려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거나 스스로의 지혜로 사역을 하는 목자들 보다 더 많은 사역의 열매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걸 보면 정말이지 부럽고도 약이 올라서 우리도 좀 더 기도하려고 하고 주님께 맡기게 되곤 해요.ꡓ

ꡒ아~ 그래요?  하하하… 그렇겠네요.ꡓ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세상의 어떠한 조건에도 구애 받지 않고 모든 환경과 외적인 상황을 초월해서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애쓰는 목자가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물질을 더해 주시고, 시간이 모자라면 여건을 바꾸어주시거나 잘 조정할 수 있는 도움을 주시고, 몸이 약하면 힘을 주시고, 동역자가 필요하면 보내주시고, 아무것도 모르면 때에 따라 지혜를 부족함 없이 주시는 등,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일 골치 아파하시는 것은 우리의 교만한 마음 입니다. 뭔가 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거나, 우리가 좀 나은 줄 알고 다른 사람을 깔보거나, 내 기준, 내 경험, 내 생각으로 밀고 나가는 때에는 하나님께서도 대책이 없으신 지,  ꡒ그래, 너 그렇게 잘 났냐?  그럼 어디 네 힘으로 한번 해봐라ꡓ 하시며 팔장을 끼고 구경만 하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이 새롭게 실감이 나곤 합니다. 새내기 목자, 목녀들로 부터 오히려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ꡒ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ꡓ (고린도 전서 1:27-29)



11.  가정교회인 목장과 소구역, 소그룹은 같은 것이다?


요즘 각 교회 안에는 예전에는 드물던 쎌 교회, 스몰 그룹, 소구역 모임 등의 이름이 붙은 여러가지 모임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 밖에도 이런 저런 소그룹 모임,  심리 치료를 위한 치유 그룹등 각종 소그룹으로 모이는 모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크던 작던 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신 공동체이어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임이 되기 위하여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말씀을  기초로 삼아서 그 위에  집을 세워야 합니다. 거기에 한가지를  덧붙이자면 우리의 촛점은 언제나 부활과 영생에 고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믿을 때에 만이 우리의 삶의 목표와 기준이 세상 사람들과 달라지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삶에서 자신의 잘못없이 겪어야 하는 아픔이나  공평하지 않은 고난은 이해 되어질 수가 없습니다. 부당한 일을 참아내고, 나를 어렵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인내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희생하고 손해 봐야 할  이유는 더 더욱 없습니다.


자신들의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 즉 우리의 문제 해결의 목적이 우선이 되게 되면, 주님은 단지 우리의 필요를 채우고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낳을 뿐, 우리의 머리나 주인이 되실 수가 없으십니다.  역경 가운데서도 모든 일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목적과도 빗나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로마서 8:29)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주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려면, 주님의 환한 광채 아래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낱낱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의 빛 가운데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진정한 우리의 사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도 선한 일을 계속해 나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보면, 문제 해결로 기도 응답을 우선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소망을 두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나, 그 상처와 고통의 원인이 우리의 이기심과 죄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들어주지 않으신다 할지라도 주님을 바라보고 감사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될 때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고자 할 때에, 우리는 그 문제를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역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시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든든히 세워가시는 것을 수시로 체험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장 식구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주어야 하는 부담 대신에, 그들을 부축해서 지치지 않도록 위로해 주며 나란히 주님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또 언젠가는 내가 그들의 부축과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내적 치유 모임이나 심리 치료 모임에서는 우리 문제 해결을 우선 목표로 두기 때문에  마음이 후련해 지는 것 같고, 중독 증세가 일시적으로 없어지는 등의 빠른 진전이나 변화가 오히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는 이런 저런 양상으로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며, 우리가 주님의 자취를 따라서 주님을 닮아가는 목표를 따라서 매일 매일 선한 싸움을 싸워가야 하는 평생의 과제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적으로 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제자들의 손수건만 놓여도 병이 낳는 신나는 장면들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런데 서신서들을 보면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그러한  권능을 가지고 온갖 이적과 기적을 행하던 바울이 자신의 육체의 괴로움을 해결 하지 못합니다. 그는 사단이 준 가시까지도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하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이신가를 깨닫게 되고, 약할 때에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을 봅니다. 그의 서신서들은 온통 고난과 인내의 메세지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 영생에 대한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에게 그려줍니다. 또한 교회에는 또 다른 빠뜨릴 수 없는 목적이 있습니다. 세상으로 가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아, 명하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구역으로 나누어서 모이고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린다 할 지라도 이러한 목적이 없으면 교회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또 교회는  이주에 한번, 한달에 한번이 아니라, 매주, 그 이상으로 모이기를 힘씁니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교회 밖의 세상을 얻기 위하여 그곳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장이 문제 해결을 위한 내적 치유 그룹이나  성경 공부나 예배를 위한 소구역  모임들과 다르게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공동체가 되고 있는지를 계속 점검하기 위해서는, 목자와 목녀같은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주님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교제를 하는 가운데 바른 관계에 서도록 온 힘을 다해서 노력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귀한 영혼들을 돌보라고 보내주시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하더래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2.   목장에서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한다?


목장은 항상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의 대가로 움직여지고 있습니다. 주로 목자와 그 배우자인 목녀의 희생입니다. 불신자들이 집을 제공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목장을 떠날까봐 목장 모임도 거의 매주 목자 집에서  하는 목장이 많습니다. 억지로 삶공부를 시키자니 등록금도 내주기도 하고, 성경책도 교재도 사줍니다. 음식도 남 섬겨 보지 못해서 맨날 빈손으로 덜렁덜렁 오거나, 작은 접시에 그저 한두 식구가 먹을까 말까 한 양을 들고 오는 사람들 때문에 남들보다 여러배 만들어야 하고, 어디엘 가도 목자가 으례히 부담해야 하는 줄 아는 이런 일들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고, 왜 시정을 하지 않는가를 묻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ꡒ목장에서는 불공평한 일이 많아야 은혜가 넘칩니다.ꡓ 라고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일부터가 불공평한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는  성실했던 맏 아들이 아버지로 부터 오히려 망나니 동생보다 못한  불공평한 대우를 받습니다. 포도원 일꾼들의 품삯도 아침 일찍 부터 일한 일꾼이나 오후 늦게 와서 잠깐 일한 일꾼이나 마찬가지로 받으니 그것도 불공평하다고 합니다.


천국의 계산법을 따르지 않고 세상의 계산법을 따르면, 하나의 잃어 버린 영혼이  온 천하 보다도 값어치 있다고 말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영혼을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불공평을  당연시하는 사람들 만이 천국에서 상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준비 되지 못한 이러한 사람들을 오래 참아 주고 기다려 주는 것도 사랑을 실천하는 한가지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속성 가운데는 인내가 반드시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없이 열매가 맺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목자들은 누구나 시간이던 물질이던 자존심이던 그 댓가를 치룰 각오와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이렇게 세상의 셈법을 따르지 않고, 불공평을 당연시하는 목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자신보다 훨씬 더 상급이 클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목사님의 말씀에 속아 넘어가 드립니다.


ꡒ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이나 땅을 버린 사람은, 백 배나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물려 받을 것이다.ꡓ (마태복음 19:29)



13.  목장에 참석하는 인원보다 예배에 참석하는 인원이 많다?


우리 교회는 교회에 먼저 다니기 시작해서 목장으로 배정되는 일이 아주 드뭅니다. 거의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불신자로서 목장에 참석하다가 일 년 후, 삼 년 후, 때로는 칠 년 후에 교회에 나아와 예수님을 영접한 일도 있습니다.


목장에 부인을 따라 참석을 한 지 칠 년 후에야 예수님을 믿고, 지금은 목자로서 사역을 하는 한 자매의 남편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식사만 같이 하고 혼자서 다른 방에서 TV를 보곤 하더니, 일 이년이 지나니까 목장 모임을 하는 같은 방에는 들어오긴 하되, 멀찌기 떨어져 앉아서 구경만 하더니, 또 일, 이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같이 둘러 앉아서 나는 여러분이 믿는 유대인을 싫어한다는 둥 엉뚱한 소리만 하다가, 드디어 칠 년이 지나더니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더랍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목장 참석자가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숫자보다 5% 정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우리 목장에도 분가하기 전부터 먼저 목장에서 삼 년 이상 기도하던 열열한 불교 신자 한 가정이 드디어 목장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을 보면 싫은 빛을 역력히 드러낼 뿐 아니라, 목장에 나오랠까봐 교인들 앞에서는 아예 얼굴을 숙이고 다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던 부부입니다. 이런 불신자들이 거의 어느 목장에나 적어도 한 두 사람씩 속해 있습니다.


미국서도 불교를 포기하지 않고, 절에 다니며 굵다란 묵주를 모셔논 그들의 집에 가서 목장 모임을 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면서도, 때로는 이런 사람들도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까 하는 회의가 들어서 낙심이 될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론 그들의 입에서 건성으로 읽혀지는 성경말씀이 감격스레 저희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간증들이  이  목장, 저 목장을 통하여 끊임 없이 교회 안에 이루어 지는 것을 볼 때마다 희망이 다시 생깁니다. 저런 사람도 변화시켜 주셨는데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목자와 목녀들이 한달에 한번씩  모여서 나눔과 기도를 하는 초원모임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도전을 주곤합니다. 서로의 어려움을 내어 놓을 때에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우리 목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에도 다른 목장을 통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4.        목장은 지역에 따라서 나눈다?


우리 교회는 지역에 따라서 목장을 나누지 않습니다. 처음에 목자를 선호하는 순위에 따라서  이십 여개의 목장이 시작된 이후에 줄곧, 새 식구들을 전도 해서 불려왔습니다. 한동네에서 만나서 데려 왔기 때문에 목장 식구들이 가깝게 사는 경우도 있고, 근처 목장에 나가는 것이 돌봐주는 데에 효율적이라고 생각해서 다른 목자들이 같은 동네 목장에 소개를 해서 보내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한 시간씩 운전을 해서 영 다른 지역의 목장에 나가는 사람들도 꽤나 많이 있습니다. 자기를 극진히 챙겨주고 섬겨주는 자신의 목자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목자라고, 자기 목장이 제일 재미있다는  착각을 하는 목장 식구들 때문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목자들이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목자란 어떤 존재인가를 물으니, 어떤 사람이 새벽 두시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마음에 부담없이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요, 라는 대답이 나와서 이제는 그것이 교회 안에 정답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친정 부모 없이 사는 새댁이 입덧을 하는데, 먹고 싶은 것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목녀랍니다. 이사 비용이 없어도 도와 달라고 기댈 수 있는 사람, 속상한 일을 모두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 부부싸움을 한 뒤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 무슨 일을 당해서 막막할 때에 거리와  시간을 막론하고 당장 뛰어와 줄 부모와 같이 여겨지는 사람이 목자와 목녀입니다.


목장 안에는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목자도 있습니다. 목장 식구들의 자녀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은 아이가 되는 것이 상례인데, 보통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때로는 고등학생들도 있고 자체 내에서 조달이 되지 않으면, 가까운 다른 목장에서 데려오기도 합니다.  현재로는 가장 어린 목자가 초등학교 1학년 입니다.


교회에서 준비한 과제물을 가지고, 한달에 한번 교육을 받은 후에 어른들이 모이는 시간에 모임을 가지고, 시간이 늦어지면, 각자가 가져온 작은 이불을 덮고 잠자리에 들기도 합니다.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임하며 기도도 열심히 하는지,  어른 목자들이 도전을 받기도 합니다.


한번은 중학생인 어린이 목자가 친한 친구로 부터 생일 초대를 받았는데, 마침 같은 날, 목장의 어린이 생일이 겹쳤답니다. 그래서 어쩌나 하고 그 학생의 엄마가 지켜보았더니, 친구의 생일이 아닌 자기 목장의 어린이 생일 파티에 가더랍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의 엄마가 ꡒ참, 목자가 뭔지… 그런 결단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찡했어요.ꡓ 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자는 성경 공부 모임이나 구역 모임 시간을 진행하는 인도자가 아닙니다. 어린 양을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고, 먹이려는  예수님의 심정을 지닌, 부모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어 나가야 하는 사람들 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거리나 연령 차이 직업이나 배경 등의 세상의 조건들을 넘어서게 하고, 주 안에서는 누구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5.        . 목장에서 제자는 가르침을 들어서 키워진다?


아닙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가르쳐 지키게까지 합니다. (마28: 20)


우리가 분가하기 전의 목장에서부터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도록 오랫동안 기도를 해오던 한 자매의 남편이 있었습니다. 함께 어울려서 매일 술을 마시던 친구들, 심지어는 배우자에게 폭행을 일삼던 친구들이 하나 하나 우리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고, 변화 되어 어떤 이들은 목자로서 열심히 사역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그 사람도 부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던 생각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로 바뀌어 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알아 차린 한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는 2년 전에 목장에 발을 들이고 삶 공부를 하고 교회에 나온 이후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어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아직 그러한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늘 생각하며 주위 사람들을 목장으로 인도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 되고는 싶어하지만 가게를 늦게 닫아서 삶공부에 올 수 없는 그 형제를 위해서 13주 동안 삶공부가 있는 날마다 오후에 가서 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대 여섯 시간씩 가게를 봐주어서 친구가 미처 하지 못한 숙제를 마치고 삶 공부에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13주의 과정이 끝난 후에, 그 형제가 예배 시간에 졸업 간증을 하기로 되어 있는 날에도 이른 예배를 먼저 드리고 가서 대신해서 가게를 열고, 봐 주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자매가 남편은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본인은 차가 없어서 삶 공부를 들을 수 없자 가까운 곳에 사는 목장의 한 다른 자매가 13주 동안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해서 삶 공부를 다 마칠 수 있었고, 믿지 않는 남편도 그 일로 인해서 많이 변화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목장식구들이 자신이 목자와 목녀에게 받은 도움이나 사랑을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보람있는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병 들었을 때 목자와 목녀의 따듯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플 때에 보고 배운 그대로 해줍니다. 자신이 처음에 미국에 와서 목자와  목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움을 받은 사람은 또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에게 그대로 해줍니다.


최목사님께서 예전에 성경을 몇 년이고 공부로만 가르쳤더니 어느 단계가 지나면 더 이상 신앙은 자라지 않고 머리만 커질 뿐 만 아니라, 그 지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비판이나 하곤 해서 그런 지식만 키우는 성경 공부에 한계를 느끼셨다고 하셨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씀도 있듯이, 교회에서 교회가 깨질 정도의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에 대해서 무식한 초신자인 경우는 별로 없고, 성경 지식도 많고 열정도 많아서 열심히 봉사하는 제직들이 대부분인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삶 공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그 분과 교제하는 것을 배웁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 보도록 실습을 하게 합니다. 교회가 무엇이고 그 존재 목적과 소명이 무엇인지 성도의 의무를 배웁니다. 그리고 전도나 제자를 삼는 방법 자체보다는 삶 공부를 인도하시는 분들의 삶 속에 있는 섬김의 자세, 영혼에 대한 열정,  겸손한 태도 등을 배우게 됩니다.


제자는 지식이나 방법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한 것을 배워서 지키며 삶에 적용을 하고 변화 되어지는 과정을 다 거쳐가며 만들어 집니다. 오랜 신앙생활의 잘못된 습관이나 틀을 바로잡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첫사랑이 식기 전에 전도와 섬김으로 신앙이 자라가게 합니다.


제자 삼는 일에 너무나 바쁘다 보니 다른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어서 교회 안에는 문제가 줄어 드는 이중 유익도 있습니다. 보통, 목장 안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선교 담당, 회계, 설교 요약, 목장 모임에 모인 숫자를 게시판에 기록하는 일, 찬양 인도, 교사, 친교 담당 등 모든 사람이 분담해서 하나씩 맡아서 합니다. 그리고 교회 사역도 각자의 은사를 개발할 수 있도록 각자에게 맞는 사역을 찾아서 한가지에 참여하게 합니다. 아무리 초신자라 할지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화장실 미화, 교회의 시계 시간 맞추기, 커피 끓이기, 유아 돌보기 등입니다.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는 한마디를 알아도 실천하게 함으로써, 머리가 크기보다는 몸이 균형을 이루어서 자라가도록 합니다.


ꡒ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인 것과 같이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ꡓ (고린도 전서 11:1)



16.        가정교회는 하나로 뭉치기 어렵다?


우리 교회에서는 언제나 소수로 구성된 목장 단위로만 모임을 가지고 교인들 끼리 모이는 행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인들 끼리 서로 사귈 기회가 없어서 모두 제 각각이고 하나로 뭉치기 어렵지 않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강한 끈에 의해서 하나로 묶여 있고 ,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쉽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교회가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일제히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는 일치되고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성경적인가 영혼구원에 관계된 것인가 아닌가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모든 사람의 생각이 쉽게 일치가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로 통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서 두 세번만 이야기하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데, 하나 됨에 관하여는, 한 성령 안에서, 한 마음, 주는 하나, 그들도 하나가 등 셀 수없이 여러번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이렇듯 중요시 여기시는 것을 우리가 실천하면, 대단한 위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늘 느낄 수 있게 하십니다.


또 우리 교회가 하나 될 수 있는 이유는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위계 질서가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여년 동안 숫자적으로 몇 배에 이를 만큼 교인 수의 증가가 있었는데, 기존 신자의 수평 이동을 적극적으로 막은 까닭에, 많은 퍼센트가 불신자로서 교회에 와서 다른 사람들의 섬김의 열매로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적인 부모가 있고 영적인 조부모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대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소수의 교회의 리더들로 좁혀지게 됩니다. 영혼 구원의 사역을 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의 리더로 세우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또한 영적으로 모두 깨어 있는 전사들입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고 극진히 섬겨주던 사람들이 교회의 방향을 정하고 정책을 세워 나가는데, 불신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신도 사무 총회도 너무나 짧은 시간 안에 싱겁게 안건들이 통과되곤 합니다. 우리 교회는 무슨 슬로건같은 것을 일부러 만드는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적으로 생긴 슬로건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ꡒ죽고 살 일 아니면 그냥 넘어갑시다ꡓ ꡒ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영혼 구원에 목숨걸자.ꡓ


ꡒ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을 넘치게 해주십시오.ꡓ (빌립보서 2:1-2)



17.         교사는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한다?


제가 처음 교회에 왔을 때 어느 한  자매가 예수님 믿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내 자기 목장에서 성경 교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의아하게 생각이 되어서, 그 목장의 한 형제에게 그런 초신자도 교사를   잘 감당하느냐고 물으니 아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목장의 성경 공부는 토론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잘못하다간, 서로의 지식 자랑이 되거나 인도자를 몰아 부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 예배 후에는 교사들을 위한 성경공부가 매주 있고 목장에서는 거기서 배운 것을 전달 받는 식으로 15분을 초과하지 않게 합니다. 요즘에는 돌아오는 주일의 설교 본문에 관한 지식을 미리 배워서 설교 말씀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그래서 초신자도 성경 교사를 할 수가 있고, 오히려 성경 지식이 부족한 초신자들을 많이 교사로 임명해서 성경 지식을 배우게 합니다. 가르치려고 준비하는 사람이 제일 은혜도 많이 받고, 공부가 많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매끄럽지 못한데도 열심히 들어주는 것도 하나의 섬김을 배우는 방법이라서 우리들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서 전통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거나, 언제나 좋은 가르침을 귀로 듣고 감명 받는 것을 즐기는 습관이 되어버린 분들에게만 갑갑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제 자신의 경험을 보면, 주일 설교를 듣고 집에 돌아간 후에 설교 제목도 생각 안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구역에서 성경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그 후에 세상 돌아가는 잡동사니 이야기를 하고서 집에 돌아 가다 보면 무엇을 배웠는지 조차 기억도 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 맨날 배워도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목장에서의 진짜 공부는 목자 목녀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으로 가슴 속에 새겨진 후에, 그것이 예수님께로 다시 이어진다고들 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저러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신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ꡒ그것은 성도들을 준비 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ꡓ    (에베소서 4:12-13)



18.여전도회가 없어서 부엌봉사가 힘들다?


우리교회에는 여전도회나 남전도회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남자 성도들이 이렇게 많이 교회에 출석하고, 봉사의 일을 하는 교회도 드물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습니다. 이건 별도의 이야기이지만, 우리 교회는 ꡒ남자들을 울리는 교회ꡓ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별명을 하나 더 만들자면,  ꡒ남자들이 부엌에서 들끓는 교회ꡓ라고 해야 할까요.


교인 끼리 만의 행사는 없애고, 이름 뿐인 부서도 없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회의도 거의 없고, 많은 시간을 절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엌 봉사는 목장 별로 돌아가기 때문에, 여자 성도, 남자 성도의 구분이 없어서 결과적으로는 일꾼이 두배로 많고, 무거운 냄비나 밥솥을 나르는 등의 문제도 자동적으로 해결이 됩니다. 거의 전교인이 교대로 돌아가니까, 소수의 사람들이 늘 부엌에 매달려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사역들도 게시판에 공고를 하고, 자원자의 사인을 받아서 충당합니다. 그래서 부엌은 오히려 화기애애하고 즐겁습니다.


얼마 전에 목장과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신 60대의 노 부부가 계십니다. 평상시 손가락도 까딱하지 않던 남편이 이런 분위기에 젖어서, 식사 후에 그릇도 나르고 물도 떠오고 하시니 그 부인은 남편의 변한 모습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목자가 되면, 늘 음식 준비에 고생하는 아내를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분담하는 이런 풍토에 따라서 살다보니, 더 화목해졌다는 간증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전도는 전도 대회 기간 동안만 하거나, 전도회에서 행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일상의 삶 속에서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여전도회가 없어서 전도를 하지 못하거나, 부억 봉사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ꡒ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ꡓ  (에베소서 5:16-17)



19. 목자를 새로 임명하려면 대부분 거부를 한다?


가정교회 세미나를 오신 목사님의 공통적인 질문 가운데에 하나가 목자가 되면 이러한 희생들을 치루어야 하고 목회자인 우리가 봐도 엄두가 안나는데, 목자가 되려고들 하냐는 것 입니다. 어느 초신자 한사람이 ꡒ목자들은 목장을 운영(?)하면서 비용들을 많이 쓰는데 그 판공비는 교회에서 받습니까?ꡓ 라고 물을 정도로  목자들은 영혼 구원과 남을 섬기는데 있어서 무엇이던 아끼지 않아서 서로가 서로에게 감명을 주곤 합니다. 그러니 목자가 되면 당연히 그러한 희생이 제일 먼저 요구 되는데 처음부터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나도 목자가 되어서 저렇게 우리 목자님,목녀님 처럼 섬기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간절히 사모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목격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삶의 무미 건조함을 채울 길이 없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봅니다. 이런 저런 것을 가지면 만족이 올까 해서 구하지만 가지면 가질 수록 더 좋은 것이 눈에 들어 옵니다. 좋은 경치를 구경해도 잠시 그때 뿐입니다. 오락이나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차를 한번 타보고 좋은 집에 살아보고 뭐든 한 번 해보았더니 만족스러워서 다시는 안해도 되겠더라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구원 받고 변하는 모습을 한번만 보면 세상에 이것 처럼 가치있고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고, 작은 일이나마 자신도 참여해 보고 나면, 평생을 이러한 가치있는 일에 자신을 바치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후에는 남이 못하도록 말릴 수도 없습니다.  희생의 댓가를 치루더라도  영혼 구원 사역을 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들을 하게 되고, 목자와 목녀로 임명 받기를 기뻐하게 됩니다.


남편이 하는 일이 늘 못 마땅해 보이던 어느 자매가 남편이 목자 임명을 받게 되자, 이제 부터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접시에다 밥을 담아주는 대신에, 얌전하게 뚜껑이 달린 주발에 밥을 담아서 주며 남편을 세워주기로 결심을 했다고 간증을 해서 교인들을 웃겼던 적이 있습니다. 철없어 보이던 어린 새신랑이 목자 임명을 받으며, 이제 자기는 작은 목사니까 거기에 맞게 행동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고 심각하게 선언을 했습니다. 도무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던 남편이 목자가 된 후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어느 새 부부 사이가 좋아진 것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순종을 했더니, 이렇게 채워주시고, 이렇게 도와주시고, 이렇게 축복을 받았다는 많은 간증들도 쏟아져 나옵니다. 그런 일들을 보며, 너도 나도 부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ꡒ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 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 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ꡓ   (데살로니가 전서 2:19-20)



20. 목장분가는 슬프다?


목장 식구가 급기야 14명을 초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까지 합치니 스무명 가량 되니까, 모이는 것도, 음식 준비도 힘이 들어집니다. 나눔도 시간에 쫓겨서 대충 넘어가게 됩니다. 더 이상 사람이 불어날까봐 걱정스러운데, 전도에 열심을 낼 리가 만무입니다. 좀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과감하게 분가를 해서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두 목장이 모두 6개월이 못되어서 두배로 불어 났습니다. 허전한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전도에 열심을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가의 위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많게는 10년간 7번 이상 분가를 한 목자도 있고,  6개월 후에 다시 분가를 해야 하는 목장도 종종 있었습니다. 분가의 원칙은 되도록이면 각 목장이 12명을 초과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목장을 나누는 방법은 목자와 목장의 사정에 맡깁니다. 하지만 최소한 3가정은 되어야 분가를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반을 나누기도 하고, 아니면 제일 영적으로 약한,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기존 목자가 나가기도 하고, 기존 목자와 목녀 두 사람이 단촐하게 나가서 새로이 개척을 하기도 합니다.


분가의 또 다른 유익이 한가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을 자기 밑에 영원히 거느리고 싶은 죄성이 있습니다. 자칫 하다 보면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대신에 자기의 제자를 만들려고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대신에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 하거나, 반대로 율법적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목장의 분가 제도는 항상 세워서 떠나 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사역을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믿음을 주관하기 보다는 돕는 자로서의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이러한 풍조가 교회를 영적으로 건강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이 언젠가는 목자와 목녀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도움을 받고 의지하려는 수동적인 자세를 버리고 성숙에 이르도록 빠른 시일 내에 훈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ꡒ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ꡓ   (빌립보서 4:9)












       
우리교회와 목사님의 자랑할 점 설문결과 이종수목사 2006.03.17